KIM HONGHEE
화제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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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HONGHEE
화제의 작가
사진 잘 찍는 법
# 32. 재빠른 이미지와 결정적 순간
‘결정적 순간’ 하면 여러분 누구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떠 올릴 것입니다. 이 말 한마디로 브레송은 세계 최고의 사진가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전설이 되었지요. 그런데 여러분, 혹시 이 결정적 순간의 본래 전시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본래 제목을 아는 분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브레송은 젊은 날 카메라를 들고 아프리카로 갑니다. 거기서 촬영을 하고 필름을 프랑스로 보내면 암실 기사가 그의 사진을 프린트를 해 주곤 했지요. 브레송에게는 따로 암실 전담 기사가 있었다는 것은 그리 진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필름들을 촬영 당시 보관을 잘 못해서 암실 기사가 프린트 하는데 아주 고생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중에는 못 쓰는 것도 있었지요.
여러분이 잘 아는 ‘셍 라자즈 기차역’이라는 작품은 당시 사진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남자가 물을 건너 반대편 사다리로 뛰는 장면의 사진입니다. 카메라와 필름의 발달로 이런 장면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라이카의 발전과 필림의 감광 속도의 발달로 얻을 수 있었던 장면입니다. 요즘의 기술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니지요.
그러나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움직임을 재빠르게 잡을 수 있었고 이 사진 한 장으로 그의 사진이 세계로 알려지는데 일조를 한 것은 분명 합니다. 요즘의 거리의 스나이퍼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의 일이 당시로서는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사진 기술의 발달로 얻어진 것이라 지금도 사진사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은 노파인더로 찍은 사진입니다. 브레송의 사진은 크롭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주위에 검은 테두리선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만은 검은 테두리가 없습니다. 크롭 했다는 것을 감추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브레송의 작가 양심이 잘 읽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술적인 발달과 사냥을 하듯이 사진을 찍어내는 브레송의 손놀림에 힘입어 당시 그의 사진전의 제목은 결정적 순간이 아니라 ‘재빠른 이미지’였습니다. 제목이 작가의 의도나 철학이 없는 말 그대로 카메라와 감광 재료의 발전을 힘입어 찍게 된 기능의 의미만 가지고 제목을 정하게 된 것입니다. 결정적 순간과 재빠른 이미지. 하늘과 땅 차이지요. 재빠른 이미지는 말 그대로 촌빨의 극치입니다.
만약 지금까지 브레송의 사진전 제목이 ‘재빠른 이미지’였다면 그는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사진가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적당한 위치에 올랐을 때 미국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전시 서문을 미국의 한 주교가 쓰게 되었는데, 그 서문 속에 ‘결정적 순간’이라는 단어가 등장을 하게 되고 이것을 제목으로 쓰면서 브레송은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재빠른 이미지로 촌구석에서 사진을 재빠르게만 찍던 기능공 수준의 사진사 브레송을 세계적인 사진가로 키운 것은 바로 이 한 줄의 서문 덕분이었지요.
결정적 순간은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빛과 구도와 감정이 일치된 순간’을 말 합니다. 이렇게 감성적이고 논리 정연한 말을 통해 브레송은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제목의 힘은 이렇습니다.
한국에도 비슷한 예가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하는 사진가 이갑철 선생의 사진집 제목 중에 ‘충돌과 반동’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스승 육명심 선생의 서문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 때 이갑철 선생의 사진집을 위한 많은 제목들이 제기 되었다고 합니다. 출간 당시 그의 책 제목이 한국인이라던지 아리랑, 넋 같은 것이 대두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갑철 선생이 스승의 서문에서 ‘충동과 반동’이라는 말을 찾아내고 그것을 끄집어내어 제목으로 썼다고 합니다. (야심한 밤이지만 지금 막 이갑철 선생에게 전화해서 확인 했습니다. 그는 저의 자랑스런 친구이기도 합니다.)
만약에 충돌과 반동이 ‘넋’이거나 ‘아리랑’이거나 ‘한국인’ 정도의 제목을 썼다면 이렇게까지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을 겁니다. 당신 충돌과 반동을 제목으로 쓰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게 어떻게 제목이 되느냐고 만류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갑철 선생은 충돌과 반동을 제목으로 붙여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이지요. 작가의 감성이자 내공이요 표면으로 드러난 한 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목은 사진집이나 사진전 전체를 통괄하는 턴키라고 말 했습니다. 여기에 기의와 기표가 동시에 존재하면서 감성적이고 육감적이며 섹시하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결정적 순간’이나 ‘충돌과 반동’이 그 좋은 예입니다.
(이 글을 읽어 주시는 귀한 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정말 감사 합니다.
공유해 주신다면 더욱 더 감사 하겠습니다.
저는 저의 제자들에게 항상 말 합니다.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다.’,
‘자신이 아는 것을 나누어라,
그래야 진짜 너의 실력이 된다.
왜냐하면 가르치면서 자가당착에 빠지고,
가르치면서 거기서 빠져 나오게 된다’라고.
주위에 사진이나 예술에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함께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아래 왼쪽은 브레송의 ‘생 라자르 기차역’이고
오른쪽 사진은 ‘충돌과 반동’의 사진입니다.
이갑철 선생께 전화로 허락 받고 올립니다.-